스텔스 스타트업 케플러, 메모리 부족 해결책 내놔다
7년간 비공개로 활동하던 케플러 컴퓨팅(Kepler Computing)이 공개 모드로 전환하며, EUV 노광 장비 없이 3D 적층과 신소재만으로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SRAM의 집적도를 높이는 기술을 발표했다. 기존 반도체 팹과 호환 가능해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신규 팹 건설 없이 메모리 공급 병목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며, 글로벌파운드리·인텔·AMD 등에서 4억 6,800만 달러를 투자받았고 미 상무부도 최대 2억 4,5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7년 넘게 조용히 컴퓨터 메모리 아키텍처를 재설계해 온 야심 찬 반도체 스타트업이 스텔스(비공개) 모드에서 벗어났다. 이 회사는 자신들의 새로운 접근법이 글로벌 메모리 칩 부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는데, 조건은 대규모 생산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8년 물리학자와 컴퓨터 과학자 팀이 설립한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기반 스타트업 케플러 컴퓨팅(Kepler Computing)은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위한 새로운 아키텍처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 기술은 컴퓨팅 시장을 제약하고 있는 칩 공급 병목 문제의 일부를 직접적으로 해결한다는 설명이다. 칩 제조사들은 보통 값비싼 극자외선 리소그래피(EUV)를 활용해 칩의 트랜지스터를 미세화해 같은 면적에 더 많은 기술을 집어넣는다. 반면 케플러는 '3D 적층(3D stacking)' 방식과 독자적인 신소재를 통해 EUV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도 집적도를 높일 수 있으며, 기존 반도체 제조 팹에서도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케플러는 CPU, GPU, XPU에 일반적으로 쓰이는 고속 캐시 메모리 분야에서도 비슷한 성과를 냈다고 말한다. 이른바 SRAM은 데이터 전송 시간을 줄이기 위해 칩 다이의 코어 안에 위치한다. 반면 HBM은 DRAM을 여러 층으로 쌓아 만드는데, DRAM은 칩과 별개의 메모리 부품이다.
케플러는 지난 몇 년간 유명 투자자들로부터 총 4억 6,8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투자자로는 글로벌파운드리, 인텔 캐피탈, AMD 벤처스, 영국 투자사 베일리 기퍼드, 그리고 빌 게이츠(그의 개인 펀드인 게이츠 프론티어를 통해)가 포함된다. 지난 7월에는 미국 상무부가 케플러에 최대 2억 4,5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약속하며, 그 목적을 '혁신적인 3D 및 강유전체 기술로 구현되는 새로운 등급의 고성능 AI 메모리 기술을 미국 내에서 개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케플러의 상당수 테스트는 싱가포르에서 이뤄지고 있다. 제조 파트넀이자 5,000만 달러를 투자한 글로벌파운드리가 이곳에 시설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케플러는 '미니 팹(mini fab)'이라 부르는 시설을 구축해 글로벌파운드리의 28나노미터 칩과 결합해 자체 메모리 칩을 생산해 왔다. (버몬트주 벌링턴에 있는 글로벌파운드리 시설에서도 테스트를 진행했다.)
케플러와 투자자들은 이 스타트업의 새로운 메모리 칩 제조 방식이 더없이 좋은 시기에 나왔다고 말한다. 글로벌 메모리 칩 부족은 이 시장의 최소 두 가지 현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 첫째, 새 팹을 짓는 것은 막대한 비용과 고된 작업이며, 둘째, 특정 종류의 메모리에 대한 수요는 순환적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센터가 주도하고 AI 열풍이 불고 있는 세상에서 HBM은 지금 가장 각광받는 메모리가 되었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을 포함한 세계 최고의 메모리 제조사들은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팹 건설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 모두는 그 시설들이 가동되는 시점에도 업계가 여전히 고대역폭 메모리를 찾을 것이란 판단에 베팅하고 있다.
케플러 컴퓨팅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데보 올라오세비칸은 "오랫동안 우리는 먼저 SRAM을 작업한 뒤 이어서 DRAM과 HBM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022년 ChatGPT 출시와 HBM 대체제에 대한 수요 폭발로 HBM 로드맵 작업을 시작했다. 지금은 SRAM과 HBM을 병행해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인텔 캐피탈의 스리니 아난스 이사는 "처음부터 이것이 DRAM이나 SRAM의 대체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시장이 그것을 결정할 것이라고 봤는데, 지금 두 가지 모두에 대한 수요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자외선 리소그래피를 우회함으로써 케플러는 반도체 제조의 주요 병목 중 하나를 피하려는 소수의 테크 스타트업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스타트업은 EUV에 투자하지 않고도 2나노미터 또는 3나노미터 칩과 동일한 집적도를 달성하는 SRAM을 생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글로벌파운드리 CMOS 사업부의 에드 카스테 수석 부사장은 "케플러의 접근법은 우리 전략의 최적 지점에 있다. 이것은 여러 세대에 걸쳐 적용 가능한 새로운 소재 체계"라고 말했다.